17. 12. 3.

LABYRINTH - [죽은 자는 죽은양의 꿈을 꾸는가?]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겼다. 돌아갈 수 없다.)


문을 열자, 그곳에는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것을 한마디로 묘사하자면.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니고.
지상도 아닌.

그런 세상이었다.
하늘은 의미가 없고 땅은 존재가 없다. 죽어가는 나무와 살아 숨쉬는 공기.
보이는 것은 의미가 없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뼛속으로 느껴지는 공간.
"여기는...."
내가 방금 내뱉은 말조차 신기루 같이 흩어지는 듯한. 그런 아득한 공간.
벽은 그저 문을 지탱할 용도로 붙어있을 뿐, 그곳은 넓고 광활하게 펼쳐진 폐허.
그래.
        '폐허'.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는
내가 있었다.
지금의 내가 아닌. 
죽은 내가.
백골에 가죽만 붙어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저건 나다.
"아. 아아...."
시선이 떨린다. 그 무저갱 같은 눈동자 속에 들어있는 나를 봤다. 괴로움에 일그러진 얼굴이 있었다. 대체 뭘까. 나는. 아니... 나는? 나라는 건 뭐고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 빌어먹을 지식은 평소엔 쓸데도 없이 툭툭 튀어나오면서. 그런 것은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C는?
C는 어디로 갔지?
알려줘.
지금 이 상황은 대체 뭐지?
알려줘.
나는 누구지?
그래. 왜, 어째서. 내가 누구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알려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떡하지.
어떻게 하지.
죽어있는 나를 가만히 보니, 나는 어떤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무언가 해야 한다.
무언가.
나는 지금 무언가
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이다.
나는.
나는....





아니.
그런다고 바뀌는 건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도 아니면.





아니.
그런 것도,
전부
의미없는 짓이 아닐까.
마지막에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그저 그대로.
죽은 내 동공에 눈을 맞췄다.
그리고 그저.





하지만 문득,                      
나는 눈맞춤을 끝내고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죽은 내 뒤에는                   
철컹, 하고                         
열리는                             


스토리텔러: 이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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