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2. 12.

LABYRINTH - [CCTV]


(철컹, 문이 잠겼다. 돌아갈 수 없다)



익숙해진 검은 복도를 터벅터벅 걸었다. 숨겨진 공간에 있던 통로였지만 다른 길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조금 더 걷다보자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지금까지 계속 보아왔던 단단한 철문이 아니라 평범한 여닫이문이 보였다. 실험실과 어울리지 않는 그 문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문보다 가장 특별한 문이었다.
 
CCVT
 
이 실험실의 중추가 확실한 방 이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 이제 와서 함정이 있다 한들 그저 죽고 끝날 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방안은 평범했다. 수많은 모니터들이 있었고 카메라를 조종할 수 있는 콘솔이 그 밑에 있었으며 안락해 보이는 의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나를 가두고 실험을 진행시켰던 연구원이나 흑막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있는 건.

오직 아연실색하고 있는 뿐이었다.

 
네가 주모자냐?”
 
아니, 난 실험실에서 숨겨진 길을 찾아서 이곳에 온건데?”
 
그건 나도....”

 
우리 두 사람 다 긴장을 풀고 서로를 살펴보았다.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납득 할 수 있었다.

상대는 고 우리는 동일인물 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일단 뭐가 있는지 살펴볼까.”
 
내가 CCTV쪽을 볼테니 네가 그 책장 쪽을 봐라. 뭔가 보이면 부르지.”
 
나도 뭔가 있으면 바로 말해주마.”

 
내가 두명 있다는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지금까지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오히려 지금이 가장 마음이 편했다. 우리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선 서로가 맡은 부분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 뭘 좀 찾은 것 같은데.”
 
“이쪽.”
 

상대의 목소리가 어둡게 느껴진 건 착각이 아니리라. 내 목소리 또한 어두울 테니까. 우리는 모여서 각자가 찾은 것들을 보여줬다.
 
우선 나부터. 구조도를 찾긴 했는데, 여긴 완전한 폐쇄공간이야. 이 안에서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게 되어있고 나가는 길은... 애초에 없어. 벽을 부순다고 해도 아마도 밖은 지하거나, 심해일 거다.”
 
내가 찾은 걸 말하자면... 우리 말고도 수많은 나들이 여기서 실험을 당하고 있어. 나 역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못 찾았다.”
 
“... 말하자면, CCTV룸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인가.”
 
그런 셈이지.”
 
“.... 이봐 ’. 좀 묻자. 너는 무슨 실험을 받았어?”
 
나는 동일조건하에 변수가 얼마만큼 생성되는지에 대한 실험... 이라고 하더군.
 
나는 영혼의 존재 유무... 기억은 어디에 저장되는가에 대한 실험.”
 
뭐냐 그게. 토 나오는군, 씨팔. 갑자기 그건 왜?”
 
사실, 방금 전에 실험 계획서 같은 것도 살펴봤는데. 지금도 우리를 제외한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실험들이 진행 중이다.”
 
“.... 내가 CCTV로 봤던 것과 비슷하군.”
어쨌든 중요한건 이 CCTV실에는 수많은 세계가 중첩되어있고 그 세계만큼의 실험실이 존재하며 실험실의 숫자만큼의 들이 실험을 받고 있다고 하더군. 그리고 여기서 나갈 길은 없어. 어느 세계라도, 어느 실험실이라도, 어느 실험체인 라고 하더라도.”
 
“... 그런가. 이렇게나 많은 들이 있는데 이 CCTV룸에 도달한 사람조차도 우리 두 사람뿐이니까.”
 
그래서, 내가 여기 설계도를 보니까. 재밌는 걸 발견했지. 자폭버튼이 있더라고.”
 
“하. 빠져나가지 못할 바에는 자살이라도 하자는 거냐?”
 
내가 겪고 있지 않더라도. 저기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고. 죽어가고 고통받고 다시 되살아나서 영문도 모르는 실험을 계속 하고 있으니까.”
 
그걸 멈추는 건 우리의 일이다. 이거냐?”
 
“그래.”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실험의 정지도 정지지만, 이 실험을 주관하는 박사들에게 크게 한방을 먹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너는 어떨까

우리가 같은 사람이라면 너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러고 보면 아까 콘솔을 살펴볼 때 딱 봐도 '위험한 버튼입니다' 하는 버튼을 봤어. 이거 맞냐?”
 
“CCTV룸 이용서를 보면 그게 맞군. 네가 누를 거냐?”
 
셋에 같이 누르지.”
 
“그거 좋네.”
 
우리는 손을 겹쳐서 버튼위에 살짝 올려 놓았다. 힘을 주면 바로 눌릴테고 그걸로 모든 것이 끝나겠지.
문득 정말 오랜만에 타인의 온기를 느껴본다 싶었다. ‘의 온기였고, 결국 였지만 어쨌든 마지막 순간에 타인이 있다는 건 지금 실험실이 터질 다른 에 비해서 운이 좋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나.”
 
.”
 
““!””


(처음으로 돌아간다)

스토리 텔러: 김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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