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2. 3.

LABYRINTH - [갈리지 않은 갈림길(C)]

(더이상 나아가기 두렵다. 이전으로 돌아가자)


통로의 종착점. 빛이 쏟아지던 그 곳에 있는 건…….


온갖 실험도구가 넘치는 방이었다.
도대체 어떤 실험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물건들이 방 곳곳에 걸려있거나 테이블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것들 중에서 여기서 유용해보이는 것이 몇몇개 눈에 띄었다.
나는 그 물건들을 집으러 다가갔다.
텅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곳을 가로막던 강화유리가 존재감을 뽐냈다.

"아욱, 씨발."

나는 손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런 나의 앞에는....

"왔구나."

흰색 가운을 입은 여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기에 그녀에게서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실험체 7414."

아니. 그녀에게서 든 이질감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 여자?
아니. 이상할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뭐지, 이 느낌?
이상할 게 없어야 하는데. 실제로 없는데.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건.
대체 뭐지?


나는,                       

                    내게 말을 걸 사람이


    ... 생각하는 거지?


"... 당신뿐이야?"

내 물음은 당연스레 좀 뜬금없는 부류의 것이 되었고. 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더욱 뜬금없는 부류의 것이었다.

"꽤 친한 것처럼 말하네, 실험체 7414."
"뭐...."

나는 그녀의 싸늘한 말에 얼굴이 바싹 굳었다.
그것도 그렇다. 나는 그녀를 지금 처음 본다. 기억은 전혀 없지만, 아마도 그리 사교적인 성격일 것 같지도 않은 내가. 이런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한테.

그런데 왜.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익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나는 얼굴을 싸맸다. 갑자기 골이 빠개지는 것 같았다. 이를 악물었다.
눈앞의 연구원 여자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 후우."

하지만 이내 한숨을 쉬었다. 체념이었다.
그런 내 속을 긁기라도 하듯, 그녀는 내 등 뒤에 대고 말했다.

"하하. 이번엔 안 달려드네. 고마운걸."

그녀는 연신 무언가 패드에 끼적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문 앞에 섰다.
싸늘하리만치 하얀 그 문은, 묘한 비장감을 선사했다.

나는 숨을 한 번 들이킨 뒤...

A



스토리텔러: 이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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