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2. 2.

LABYRINTH - [단말마의 기억 -#2]

(뭔가 이상하다. 잠시 돌아가자)

"이건, 또 뭐야."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황당함을 느껴야 했다. 눈앞에 펼쳐진 지도 때문이었다.





조잡하게 그려진 지도다. 이것도 홀로그램인지 뭐시기인지, 어쨌든 허공에 떠 있다.
클릭하면 확대되는 구조인 것 같다.

"흠."

대충 파악하기로는 지금까지 지나온 곳을 표시해놓는 지도 같았다. 어린애가 발가락으로 그려도 저거 보단 잘 그리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도를 훑었다.

문득 상기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프로젝트 레이비린스. 생소한 단어였지만, 눈에 익었다. 이 기묘하고 소름 끼치는 감각. 나는 머릿속을 헤집는 생소한 지식에 몸서리쳤다.

"그 지도를 보면 무슨 느낌이 들어?"

문득 뒤에서 지긋지긋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멀찍이 옆에 서 있는 연구원 여자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진저리치며 그녀에게 물었다.

"언제 쫓아왔지?"
"후후. 그렇게 말하는 건 정말 변하지를 않네."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다. 허물어진 형상이 치지직, 하는 짧은 잡음과 함께 내 코앞에서 다시 뭉쳐져 간다. 하얀 가운을 펄럭이며 모습을 나타낸 여자는 내게 얼굴을 디밀며 말했다.

"저쪽 방의 내가 먼저였을까, 아님 지금 내가 먼저였을까?"
"크윽, 씨발. 저리 꺼져."

이 빌어먹을 여자는 쇼맨십도 있는 듯하다. 나는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여자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까딱여 보였다.

"흠."

여자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갑자기 얼굴이 조금 굳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린 나를 빤히 노려본다. 화가 난 것인가. 아무래도 입장이 입장이다 보니 마른 침을 한 덩이 삼키고 있자니.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네. 흐흐."
 "뭐라고?"
"아무것도."

연구원 여자는 그렇게 길게 숨을 쉬나 싶더니, 들고 있던 태블릿에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고개를 든다. 기분탓일까. 전보다 눈빛이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뭐, 알겠다. 다음 방으로 진행하도록 해."
"조까. 말 안 해도 갈 생각이니...."

... 까지 말하고 나는 말을 멈췄다. 눈앞에 다다른 새하얀 벽.
나를 반기는 문은 두 개였다. 심지어 이번엔 색의 차이도 없는, 그저 하얗고 하양 일색의 문이.
왼쪽과,
오른쪽.

각각 하나씩 붙어있다.

나는 연구원 여자를 한 번 쏘아보고는, 지도를 가리켰다. 연구원은 잠시 내 행동을 살피더니, 곧 해석을 마쳤는지 대답을 했다.

"앞으로 가는 길은 하나야. 여전히 내가 말해줄 건 그거 밖에 없네."

그리고 나는 그 때 확신했다. 이 여자는 확실히 전보다 차가워졌다. 왜일까. 하긴 대놓고 욕을 먹고도 차가워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걸지도 모른다. 어차피 더 이상 얻어낼 정보도 없는 것 같고, 신경쓸 이유는 없으리라.
가는 길은 하나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은가.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죽음?

문득 가슴을 쓸어내리는 서늘한 단어 하나.
순간 움직임이 멎었던 나지만. 곧 스멀스멀 기어드는 불안을 떨쳐냈다. 어차피 아무런 단서도 없는 마당에, 주저해야 무얼 하겠는가.

"그럼...!"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왼쪽 문을 선택했다.

"흐흥."

문득 연구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여자를 쳐다봤다.
여자의 눈은 그 사이 흥미롭다는 듯, 나를 탐색하고 있었다.

"... 흐음."

가만히 나를 노려보며 태블릿을 노려보는 여자를 뒤로 하고. 나는 왼쪽 문을 열었다.

철커덩, 익....

나는 기분나쁜 연구원의 시선을 뒤로 한 채,

ㅁ


 

스토리텔러: 이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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