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2. 11.

LABYRINTH - [잘못과 성찰/ 그녀의 수기. 2]

(수기의 전 페이지로 돌아간다)


"오? 이쪽으로 왔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가 잘 보이도록 좀 더 가까이 영상을 조절했다.

또각,
또각,
또각.

발소리를 넣었다.
그가 이쪽을 돌아봤다. 그 지겹도록 익숙한 얼굴. 그 지겨운 얼굴이, 마치 처음 본다는 듯이 나를 생경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 역시 질리도록 봤다.
이번이, 7413번째 실험이었나? 그 중에 반절은 이 C실험실로 왔으니, 대략 3천번 하고도 5백번은 더 본 셈이다.

그 눈알이 돌아갈 숫자에 새삼 탄복하면서도, 나는 우선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기분은 어때?"
"닥쳐. 출구나 말해."
"오우, 무서워라."

이짓도 계속 하다보니 점점 무뎌지는 걸 느낀다. 그... 7413번째 실험체는 여전히 입이 험했고, 이렇게 욕을 먹은 것도 3천번을 넘어가니 안 들으면 섭섭할 정도다.

"이익!"

그리고 그 순간.
별안간 그가 내게 달려들었다.

정확히는 홀로그램 영상을 통해 달려들었다. 그의 주먹이 내 화상을 통과해 허공을 문지른다. 쯧. 나는 혀를 차며 영상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아 네."

영상이 돌아오면서 목소리에 노이즈가 좀 끼었다. 내가 듣기에도 좀 기괴한 목소리였다. 그도 그렇게 느꼈음인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 증오 섞인 얼굴. 몇 번을 마주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네. 나는 한숨 섞인 웃음을 흘리며, 그에게 말했다.

"출구 찾지? 나가려면 저 쪽."

나는 언제나 그랬듯 그에게 나아갈 것을 권했다. 그는 선택권이 없으니 앞으로 향할 것이고. 그렇게 또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서리라.

언제까지고.

나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택의 굴레로 빠지게 될 것이다.

"나갈 수 있으면 말이지만."

나는 결국 그렇게 한마디 덧붙이고 말았다. 이런. 이 습관은 도무지 고쳐지질 않네.
자책하는 내 앞으로 7413번째 실험체가 걸어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태블릿을 입력한다.
그리고 선고하듯 중얼거렸다.


"실험체 7413. 현시간부로 '다중 시간선 비선형 제어 관리 실험'을 시작한다.
행운이 있길."



철커덩, 끼이익. 그는 문을 열고 다음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스토리텔러: 이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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