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2. 12.

LABYRINTH - [잔인한 슈뢰딩거 / 그녀의 마지막 수기]


(이전 장으로 돌아간다)


그 뒤로 나는 한 동안 관찰일기를 작성하지 않았다.
지금, 7414 실험체의 행보는 그 전의 실험체... 7413이 보인 행보와 대부분 일치했다. 거의 똑같다고 봐도 좋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 전 실험체와, 지금의 실험체.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면, 같은 상황에서 같은 시간을 다시 경험할 때.
당연히 같은 반응과 결과가 나오는 게 정상일 테니까.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첫번째 문에서 왼쪽을 선택했다.
선택과 생존. 혹은 죽음.
그것을 반복하는 실험체를 볼 때마다 나는 떠올리곤 한다.
공연히 원망을 한다.
그 저명한 슈뢰딩거는 고양이를 가지고 실험을 했다. 그것도 머릿속으로만.

신이시여.
해도해도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할 그 고양이조차 생각 속에서만 죽고 살아나길 반복했는데.
나는 하물며 살아있는 사람을 놓고 죽음과 삶을 반복하고 있으니.
내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이런 지랄 같은 상황을 겪게 하시나요.

나는요.
이제 저 사람이 진짜 살아있는 건지.
아니면 죽은 건지.

그리고 내가 정말 살아있는지조차,
의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끄... 악!"

예의 비명이, 다시금 방 안을 메웠다.
소름끼치도록 날카로운 비명이었지만, 나는 기대감이 먼저 차오르는 걸 억누를 수 없었다.
"왜 그러지, 7414?"
내 물음에 7414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만 두려움에 찬 눈으로, 나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다.
그 눈. 익숙한 눈. 등줄기가 빳빳이 섰다. 입을 다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내뱉기도 전에, 7414는 후다닥 문에서 손을 떼고 반대편 문을 향했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을 때, 내 입을 타고 흘러나온 건.
"드디어, 도착했구나."
일종의 감격이었다.
나는 영감을 얻은 시인처럼.
수천번 만에 처음으로.
태블릿 패드를 들고.
마지막 한 줄을 추가했다.

"... 흠."

미심쩍은 한숨을 흘린 실험체는 그대로, 왼쪽 문을 향해 빨려들 듯 들어가 버렸다.

"자. 그럼 나도 이제...."

마음이 지금처럼 가벼운 적이 또 있을까.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홀로그램 화상을 종료했다.
이제 남은 건,
최종단계 뿐이다.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말을 하는 것도 무의미한가?
애초에 이곳으로 오는 길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가 이 수기를 발견할 리도 없을 테니까.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한 실험성공 사례. 수천번 있던 실험 중에도 손에 꼽을 그 실험의 마지막을, 나는 끝까지 지켜볼 자신이 없다.

지쳤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나는 책상 한 구석에 다소곳이 놓여있던 권총을 들어올렸다.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마지막으로 슈뢰딩거, 당신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저 불쌍한 고양이를 그만 놔주세요.
고양이가 제 마지막 정도는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말이야.

"행운이 있길."

총구를 관자놀이에 향했다. 손가락에 힘을 줬다.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하는 소리가 났나?

잘 모르겠다.



스토리텔러: 이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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