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2. 3.

LABYRINTH - [단말마의 기억 -#0]


(뭔가 이상하다. 잠시 돌아가자.)

 "이건, 또 뭐야."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황당함을 느껴야 했다. 눈앞에 펼쳐진 지도 때문이었다.



조잡하게 그려진 지도다. 이것도 홀로그램인지 뭐시기인지, 어쨌든 허공에 떠 있다.
클릭하면 확대되는 구조인 것 같다.

"흠."

대충 파악하기로는 지금까지 지나온 곳을 표시해놓는 지도 같았다. 어린애가 발가락으로 그려도 저거 보단 잘 그리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도를 훑었다.

문득 상기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프로젝트 레이비린스. 생소한 단어였지만, 눈에 익었다. 이 기묘하고 소름 끼치는 감각. 나는 머릿속을 헤집는 생소한 지식에 몸서리쳤다.

"아, 그거 내가 만든 거야! 어때?"

문득 뒤에서 지긋지긋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멀찍이 옆에 서 있는 연구원 여자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진저리치며 그녀에게 물었다.

"언제 쫓아왔지?"
"후후. 글쎄? 맞춰봐."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그녀의 모습이 사라진다. 허물어진 형상이 치지직, 하는 짧은 잡음과 함께 내 코앞에서 다시 뭉쳐져 간다. 하얀 가운을 펄럭이며 모습을 나타낸 여자는 내게 얼굴을 디밀며 말했다.

"저쪽 방의 내가 먼저였을까, 아님 지금 내가 먼저였을까?"
"크윽, 씨발. 저리 꺼져."

이 빌어먹을 여자는 쇼맨십도 있는 듯하다. 나는 앞에 서 있는 여자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아, 오랜만에 이쪽으로 와서 너무 들떴네. 미안하게 됐어."

연구원 여자는 그렇게 길게 숨을 쉬나 싶더니 들고 있던 태블릿에 시선을 던졌다. 몇 줄 끼적이고는 다시 고개를 든다. 기분탓일까. 전보다 눈빛이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뭐, 그러면. 다음 방으로 가자."
"조까. 말 안 해도 갈 생각이니...."

... 까지 말하고 나는 말을 멈췄다. 눈앞에 다다른 새하얀 벽.
나를 반기는 문은 두 개였다. 심지어 이번엔 색의 차이도 없는, 그저 하얗고 하양 일색의 문이.
왼쪽과,
오른쪽.

각각 하나씩 붙어있다.

나는 연구원 여자를 한 번 쏘아보고는, 지도를 가리켰다. 연구원은 잠시 내 행동을 살피더니, 곧 해석을 마쳤는지 대답을 했다.

"앞으로 가는 길은 하나야."
"하지만 문은 두 개...."
"음... 미안하지만, 내가 말해줄 건 그거 밖에 없네."
.
가는 길은 하나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은가.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죽음?

문득 가슴을 쓸어내리는 서늘한 단어 하나.
순간 움직임이 멎었던 나지만. 곧 스멀스멀 기어드는 불안을 떨쳐냈다. 어차피 아무런 단서도 없는 마당에, 주저해야 무얼 하겠는가.

"그럼...!"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오른쪽 문을 선택했다.

"...... 아."

문득 연구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여자를 쳐다봤다.
여자의 눈은 그 사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축 처져 있었다.

불쌍하다는 듯이.

나를 가만히 탐색하고 있었다.

"... 이건, 가능성이 없네요. 하아. A로 가죠."

그렇게 중얼거렸다.
분명히 들었다.

태블릿을 끼적이는 여자를 뒤로 하고. 나는 오른쪽 문을 열었다.

철커덩, 익....

기분나쁜 연구원의 시선을 뒤로 한 채,





스토리텔러: 이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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