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2. 3.

LABYRINTH - [ROOT - C #0]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겼다. 돌아갈 수 없다.)



이젠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치미는 하얀 빛이 쏟아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방은 온통 잿빛 하얀색뿐이다.

내가 검은색 문을 열었던 게 맞나? 눈앞에 펼쳐진 하얀 격벽의 파도를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이는 것 같다.

"오? 하하하! 이리로 왔네! 반가워 반가워!."


또각!  또각!  또각!

가까워지는 발소리.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가,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라는 점이 떠올랐다.
방금 전에 들었던 목소리다.

"안녕, 실험체 1413."

활발한 목소리. 분위기와는 안어울린다 싶을 정도로 밝은 얼굴의 여성. 눈 아플 정도로 하얀 가운을 입었고. 바이저 고글 비슷한 걸 쓰고 있어 얼굴이 정확히 보이지는 않는다.

손에는 아날로그식 차트를 들고 있었다.

연신 나를 흘깃거리며 무언가 작성하고 있다. 저 시선. 마치 나를 구경거리를 구경하는 듯한, 그리고 장난치는 듯한 태도가 심히 거슬렸다.

"기분은 어때?"

그러면서도 자기 혼자 심각하게 여유로운 저 말투 역시 매우 거슬렸다. 자연히 내 심사는 비틀렸고.

"닥쳐. 출구나 말해."
"아이, 왜 그래! 내가 뭐 기분 나쁘게 한 거 있어?"

내 서슬퍼런 말에도 그녀는 방글거리며 태블릿 패드에 한 줄을 추가할 뿐이다. 보나마나 나에 대한 걸 끼적이고 있겠지. 무슨 신이라도 된 마냥 나를 평가하면서.
나는 별안간, 아무 말도 없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주먹을 움켜쥐고,
힘껏 내지른다. 주먹이 크게 뜨인 눈앞의 여자 눈두덩에 적중했다.

아니, 적중한 줄 알았다.

"  !"

노이즈와 함께 여자의 얼굴이 크게 흔들렸다. 흐물흐물 녹듯이 모습이 허물어졌다가, 거짓말처럼 다시 모여든다. 다시 모여든 얼굴은 웃고 있었다. 비웃는 것 같기도, 동정하는 것 같기도 한 웃음.

"이걸 어째? 이거 홀로그램 영상이야. 실험체의 심적 안정을 위해 사람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해서."

... 기분 나쁜 년 같으니.

삐이익-

... 맑게 울리는 소리에 눈을 돌렸다. 내가 들어온 곳의 맞은 편. 반대편 문에서 나는 소리였다.

"출구 찾지?"

 문득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를 다시 돌리자 연구원 여자는 히죽 웃으며 문 쪽을 가리켰다.

"나가려면 저쪽."

나는 아니꼬운 눈빛을 한 번 쏘아내는 내게, 그녀는 슬쩍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행운을 빌어."

그 말을 뒤로한 채, 나는 천천히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고리를 잡고 힘껏 열어젖혔다. 덜컹, 끼이익... 낡은 문 특유의 금속음이 귀를 찌르길 잠시. 등 뒤에서 그년의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실험체 1413. 현시간부로 '다중 시간선 비선형 제어 관리 실험'을 시작할게요."

유난히 건조하게 들리는 그 말을 무시한 채.

A



스토리텔러: 이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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