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1. 14.

LABYRINTH - [ROOT - C]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겼다. 돌아갈 수 없다.)




이젠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치미는 하얀 빛이 쏟아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방은 온통 잿빛 하얀색뿐이다.

내가 검은색 문을 열었던 게 맞나? 눈앞에 펼쳐진 하얀 격벽의 파도를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이는 것 같다.

"오? 여기로 왔네."


또각  또각  또각

가까워지는 발소리.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가,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라는 점이 떠올랐다.
방금 전에 들었던 목소리다.

"안녕, 실험체 7413."

건조한 얼굴로 손을 흔드는 여성. 눈 아플 정도로 하얀 가운을 입었고. 바이저 고글 비슷한 걸 쓰고 있어 얼굴이 정확히 보이지는 않는다.




손에는 태블릿 패드를 들고 있었다.

연신 나를 흘깃거리며 무언가 작성하고 있다. 저 시선. 마치 나를 감시하는 듯한, 그리고 내려다 보는 듯한 시선이 심히 거슬렸다.

"기분은 어때?"

그러면서도 자기 혼자 심각하게 여유로운 저 말투 역시 매우 거슬렸다. 자연히 내 심사는 비틀렸고.

"닥쳐. 출구나 말해."
"오우, 무서워라."

내 서슬퍼런 말에도 그녀는 눈 하나 깜짝않은 채 태블릿 패드에 한 줄을 추가할 뿐이다. 보나마나 나에 대한 걸 끼적이고 있겠지. 무슨 신이라도 된 마냥 나를 평가하면서.
나는 별안간, 아무 말도 없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주먹을 움켜쥐고,
힘껏 내지른다. 주먹이 크게 뜨인 눈앞의 여자 눈두덩에 적중했다.

아니, 적중한 줄 알았다.

"아 네."

노이즈와 함께 여자의 얼굴이 크게 흔들렸다. 흐물흐물 녹듯이 모습이 허물어졌다가, 거짓말처럼 다시 모여든다. 다시 모여든 얼굴은 웃고 있었다. 비웃는 것 같기도, 동정하는 것 같기도 한 웃음.

"이거 홀로그램 영상이야. 실험체의 심적 안정을 위해 사람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해서. 어때, 심적 안정이 좀 생겨?"

... 기분 나쁜 년 같으니.

삐이익-

... 맑게 울리는 소리에 눈을 돌렸다. 내가 들어온 곳의 맞은 편. 반대편 문에서 나는 소리였다.

"출구 찾지?"

 문득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를 다시 돌리자 연구원 여자는 히죽 웃으며 문 쪽을 가리켰다.

"나가려면 저쪽."

나는 아니꼬운 눈빛을 한 번 쏘아내는 내게, 그녀는 슬쩍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나갈 수 있으면 말이지만."

그 말을 뒤로한 채, 나는 천천히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고리를 잡고 힘껏 열어젖혔다. 덜컹, 끼이익... 낡은 문 특유의 금속음이 귀를 찌르길 잠시. 등 뒤에서 그년의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실험체 7413. 현시간부로 '다중 시간선 비선형 제어 관리 실험'을 시작한다. 행운이 있길."

유난히 서슬퍼렇게 들리는 그 말을 무시한 채.




스토리텔러: 이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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